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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이태준은 1925년부터 6․25 직후까지 약 30년에 걸쳐 단편 60여 편과 중․장편 18편을 발표한 한국현대소설사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1904년에 태어나 22세 때인 1925년 7월 《조선문단》에 「오몽녀」가 당선되며 문단에 나온 그는, 《개벽》 社에 입사하던 1929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전개, 소위 암흑기와 광복, 6․25를 거쳐 1953년 무렵까지 소설은 물론 시, 동화, 희곡, 수필, 평론 등 문학의 전 갈래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가 주력한 것은 소설이었고, 그의 흔적은 우리의 현대문학사에서 소위 황금기라 일컫는 1930년대, 그리고 좌우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광복 이후와 6․25 전후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태준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1930년대는, 만주사변(1931년)에서 중일전쟁(1937년)을 거쳐 태평양전쟁(1941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확대되는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온갖 수탈과 정치적 억압을 받았던 때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탄압은 물론 민족말살정책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압제 속에서 문학인들은 1930년대 우리 문학의 독특한 성격을 형성하였다. 그것은 역사와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기보다는 비유의이고 우회하는인 방법으로 접근하거나 창작의 형식과 기교적인 면에 주력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1930년대는 여러 가지 창작방법론이 등장하며 일제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대문학사 중에서 가장 다양한 성과와 주요 문제들을 낳게 된다. 특히 소설의 경우 순수소설, 농촌소설, 모더니즘소설, 세태소설, 풍자소설, 역사소설, 장편소설, 대중소설, 리얼리즘소설 등 다양한 기법이 등장하며, 어느 시기보다 풍성한 작품이 발표되었다. 이태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소설에서도 <역사와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기보다는 비유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거나 창작의 형식과 기교적인 면에 주력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백철, 최재서 등 당대의 평가에서 이재선, 정한숙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은 기법의 측면에서는 일관되게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정한숙은 『현대한국문학사』에서 <이태준은 현대소설의 기법을 완벽하게 처재한 작가>로 평가했다. 치밀한 구조와 섬세한 분위기의 창조, 낱말 하나를 바꾸어 놓을 수 없이 완벽하게 짜여진 구조와 정확하기 짝이 없는, 간결한 언어, 조각처럼 뚜렷하게 제시되는 성격의 제시와 인물표현, 그리고 그런 인물들의 일상생활 가운데 흐르고 있는 유우머와 페이서스 등, 그의 단편은 어느 구석에도 흠잡을 데가 없다. 반면에 현실이나 현대의미의 측면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최재서가 1937년《조광》25호에 상허가 창조한 인물들은 모두 현실의 역동적 삶과는 멀리 떨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그의 단편은 시대적 거리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커다란 결점으로 지적한 이래로, 이태준의 단편들은 그렇게 짜임새 있고 인물묘사나 문체에 있어 성공적이면서도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 때문에 시대의미의 없다, 감상주의 등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에 월북작가의 작품이 해금되어 이태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기법과 시대의미을 양분하는 기존의 평가에서 벗어나, 기법에 수반된 시대의식의 수준에서 접근하는 등의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이태준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이태준이 <소설미학과 시대의미이 조화롭게 결합>된 단편소설을 남김으로써 <한국 단편소설사상에 있어서 김동인과 현진건의 뒤를 이어 누구보다도 뚜렷한 공적을 남긴 작가>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는, 먼저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이태준의 월북 이후의 삶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태준의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이태준 소설의 특징과 그 문학사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기법은 뛰어나지만 현실인식은 부족>하다는 기존의 평가가 부당하다는 것을 재확인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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